Essay & Columm

 

서울의 봄(春) - 노천명


서울의 봄(春)은 눈 속에서 온다. 

남산은 푸르던 소나무는 가지가 휘도록 철겨운 눈송이를 안고 함박꽃l 피웠다.

달아나는 자동차의 전차들도 새로운 흰 지붕을 이었다. 아스팔트 다진 길바닥, 펑퍼짐한 빌딩 꼭대기에 백포(白布)가 널렸다. 가라앉은 초가집은 무거운 떡가루 짐을 진 채, 그대로 찌그러질 초가집은 무거운 떡가루 짐을 진 채, 그대로 찌그러질 듯하다. 푹 꺼진 기왓골엔, 흰 반석이 디디고 누른다. 비쭉한 전신주도 그 멋갈없이 큰 키에 잘 먹지도 않는 분을 올렸다.

이 별안간에 지은 세상을 노래하는 듯이 바람이 인다. 은가루, 옥가루를 휘날리며, 어지러운 흰 소매는 무리무리 덩치덩치 흥에 겨운 갖은 춤을 추어 제낀다. 길이길이 제 세상을 누릴 듯이.

그러나 보라! 이 사품에도 봄 입김이 도는 것을, 한결같이 흰 자락에 실금이 간다. 송송 구멍이 뚫린다. 돈짝만 해지고, 쟁반만 해지고, 댓님만 해지고, 댕기만 해지고, ....... 그 언저리는 번진다. 자배기만큼 검은 얼굴을 내놓은 땅바닥엔 김이 무럭무럭 떠오른다.

겨울을 태우는 봄의 연기다. 두께두께 언 청계천에서도, 그윽한 소리 들려온다. 가만가만 자취 없이 가는 듯한 그 소리, 사르르사르르 이따금 그 소리는 숨이 막힌다. 험한 고개를 휘어 넘는 듯이 헐떡인다. 그럴 때면, 얼음도 운다. ‘하며 부서지는 제 몸의 비명을 친다. 언 덜음이 턱 갈라진 사이로 파란 물결은 햇빛에 번쩍이며 제법 졸졸 소리를 지른다.

축축한 담 밑에는, 눈을 떠 이은 푸른 풀이 닷분이나 자란다.

끝장까지 보는 북악에 쌓인 눈도 그 사이 흰빛을 잃었다. 석고색으로 우중충하게 흐렸다.

그 위를 싸고도는 푸른 하늘에는, 벌써 하늘하늘 아지랑이가 걸렸다.

봄이 왔다. 눈릭, 얼음 고개를 넘어, 서울에 순시간에 오고 만 것이다.

 
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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